차루 마줌다르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차루 마줌다르 চারু মজুমদার (벵골어) Charu Majumdar (영어) चारू मुजुमदार (힌디어) | |
국적 | |
출생 | |
사망 | |
학력 | 북벵골대학교 중퇴 |
직업 | |
정당 | |
종교 | |
배우자 | 리라 마줌다르 솅굽타 |
자녀 | 압히짓 마줌다르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영국령 인도 벵골주 실리구리에서 부유한 자민다르[2]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 식민지배층에게 협력하여 얼마든지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대지주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독립운동에 열성적이었는데 이는 차루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차루는 대학교에 재학중이던 1936년 공산주의를 접하게 되었고 이에 크게 감명받아 당시 영국에 의해 금지되어 있던 인도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1937년 대학을 자퇴하고 농민운동에 투신한 그는 테바가 운동에 참여했다. 테바가 운동은 소작농들이 지주에게 절반 이상의 작물을 바쳐야 했던 당시 관습을 없애고, 작물 총생산의 1/3이하로만 지주에게 넘기며 2/3의 농지를 소작농들이 나눠갖자는 일종의 균전론, 여전론 실시 운동이었다.
고향인 실리구리 인근의 잘파이구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1942년 그곳에서 체포되었고 2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출소한다. 이후1948년 인도 자치령 국가보안법이 통과되어 인도 공산당의 활동이 불법화되자 농촌에서 조용히 활동하다 1956년 서벵골의 차밭 소작농들과 함께 지주들에게 대항했다는 이유로 또 체포된다.
그리고 몇개월 수감된 후 풀려났다가 1962년 중국-인도 국경분쟁으로 인해 국가방위법이 통과되자 또다시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한다. 이후 1964년 인도 공산당이 수정주의 노선으로 갈아탔다고 공격하면서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CPI(M))에 참여하였으나 1967년 서벵골 낙살바리에서 대규모 농민봉기가 일어나자 합법노선으로 전환한 CPI(M)을 다시 공격하면서 또다른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레닌주의)(CPI(ML))을 창당하여 서기장으로 취임하는 동시에 독립한다.
직후 그는 낙살라이트 운동을 개시, 무력을 통한 카스트로부터의 해방과 계급투쟁과 혁명을 추구하며 폭력 노선을 타기 시작한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CPI(ML)은 서벵골 지방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떨쳤으며 점차 중부와 중서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인도정부는 그를 위험 인물로 간주하였고 정부요인의 암살을 사주하고와 내란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그에게 수배령을 내렸다.
1972년 7월 16일 그는 콜카타에서 체포되었고 그달 26일 인도 정부는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몇몇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차루는 인도 경찰관들에게 극심한 구타와 끔찍한 고문까지 당했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가족에게 인도되지 않고 곧바로 화장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 낙살라이트 운동은 사분오열되었으나 차티스가르와 서벵골 일대에서 여전히 낙살라이트 계열 무장 반군들이 산발적으로 테러를 저지르거나 인도 군경을 사살하는등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다. 낙살라이트는 현대 인도의 가장 큰 사회적, 정치적 문제중 하나로 남아있다.
차루는 대학교에 재학중이던 1936년 공산주의를 접하게 되었고 이에 크게 감명받아 당시 영국에 의해 금지되어 있던 인도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1937년 대학을 자퇴하고 농민운동에 투신한 그는 테바가 운동에 참여했다. 테바가 운동은 소작농들이 지주에게 절반 이상의 작물을 바쳐야 했던 당시 관습을 없애고, 작물 총생산의 1/3이하로만 지주에게 넘기며 2/3의 농지를 소작농들이 나눠갖자는 일종의 균전론, 여전론 실시 운동이었다.
고향인 실리구리 인근의 잘파이구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1942년 그곳에서 체포되었고 2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출소한다. 이후1948년 인도 자치령 국가보안법이 통과되어 인도 공산당의 활동이 불법화되자 농촌에서 조용히 활동하다 1956년 서벵골의 차밭 소작농들과 함께 지주들에게 대항했다는 이유로 또 체포된다.
그리고 몇개월 수감된 후 풀려났다가 1962년 중국-인도 국경분쟁으로 인해 국가방위법이 통과되자 또다시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한다. 이후 1964년 인도 공산당이 수정주의 노선으로 갈아탔다고 공격하면서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CPI(M))에 참여하였으나 1967년 서벵골 낙살바리에서 대규모 농민봉기가 일어나자 합법노선으로 전환한 CPI(M)을 다시 공격하면서 또다른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레닌주의)(CPI(ML))을 창당하여 서기장으로 취임하는 동시에 독립한다.
직후 그는 낙살라이트 운동을 개시, 무력을 통한 카스트로부터의 해방과 계급투쟁과 혁명을 추구하며 폭력 노선을 타기 시작한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CPI(ML)은 서벵골 지방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떨쳤으며 점차 중부와 중서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인도정부는 그를 위험 인물로 간주하였고 정부요인의 암살을 사주하고와 내란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그에게 수배령을 내렸다.
1972년 7월 16일 그는 콜카타에서 체포되었고 그달 26일 인도 정부는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몇몇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차루는 인도 경찰관들에게 극심한 구타와 끔찍한 고문까지 당했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가족에게 인도되지 않고 곧바로 화장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 낙살라이트 운동은 사분오열되었으나 차티스가르와 서벵골 일대에서 여전히 낙살라이트 계열 무장 반군들이 산발적으로 테러를 저지르거나 인도 군경을 사살하는등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다. 낙살라이트는 현대 인도의 가장 큰 사회적, 정치적 문제중 하나로 남아있다.
3. 사상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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